*결말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원미동 사람들로 우리에게 친숙한 작가 양귀자의 소설 [모순]을 읽었다. 구독하고 있던 도서 관련 유튜버의 추천으로 찾아봤는데 1998에 쓴 이 책이 아직까지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은 왜일까 궁금해서 읽게 되었다. 최근 판타지나 추리소설만 읽고 있었는데 극히 현실적인 내용의 책이라 오히려 신선했다. 잔잔하게 읽혀서 하루만에 다 읽었는데, 읽을때 보다 읽고 나서 생각이 많아지는 책이었다.
이 책에서 가장 큰 모순은 주인공 안진진의 마지막 선택일 것이다. 이모의 죽음을 겪고 나서도 자신의 결혼 상대로 사랑하는 사람이 아닌 경제적으로 안정적인 사람을 택한 것. 하지만 내 기억에 남는 모순은 안진진의 어머니이다. 안진진의 가족은 평화롭지 않고, 안정적이지 않다. 술만 마시면 폭력적으로 변하며 술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조폭이 되고 싶은 남동생, 집안의 모든 생계를 책임지는 어머니. 안진진의 어머니는 쌍둥이 자매인데, 이모는 경제적으로 부유한 집으로 시집을 가 어머니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이모와 결혼한 이모부는 모든 미래가 정해져 있는 사람이었는데 이모는 그 안에서 무료함을 느끼고 있었다.
몇십년 동안 행방불명이었던 아버지가 어느날 갑자기 집으로 돌아온다. 몸의 병과 치매를 가지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원망했지만 더 힘차게 일하고 책을 읽으며 해결법을 모색했다. 동생 진모가 감옥에 갔을 때도 어머니는 그랬다.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문제를 힘차게 해결해 나갔다. 그러나 이모는 달랐다. 안진진이 보기에 이모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었다. 자신의 어머니가 할만한 고민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자신의 어머니가 하는 말들을 할 일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모가 자신의 유일한 재미였던 조카, 안진진과 눈이 오는 날 데이트를 한 이후, 목숨을 끊었다. 이모가 안진진에게 남긴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진진아, 나, 이제 끝내려고 해... 그동안 너무 힘들었거든... 나도 그렇게 사는 것처럼 살고 싶었어... 무덤 속처럼 평온하게 말고.
이모가 죽은 이후에도 시간은 흘렀다. 어머니는 자신의 반쪽을 떼어내고 몇번이나 쓰러졌지만 다시 일어났다. 어머니에게는 가만히 슬퍼할 시간이 없었다. 아픈 아버지와 감옥에 있는 동생, 결혼을 앞두고 있는 안진진까지. 어머니는 삶의 어려움 속 긴장으로 가득 차있었다. 어머니는 더욱 바빠졌고 나날이 생기를 더해갔다. 어머니의 불행하고도 행복한 삶...
책을 읽는 내내 제목이 [모순]이기 때문에 안진진의 선택이 사랑하는 김장우가 아닌 나영규일 것이라 예상했으므로 큰 반전은 아니었다. 하지만 왜 안진진이 이모로 하여금 얻은 가르침을 가슴깊이 받아들이지 않고 이모와 같은 선택을 했을까. 책 속에서 안진진은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고 말한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이게 작가 양귀자가 하고 싶은 말인 것 같다. 모순이란 알면서도, 예상하면서도 자신에게 없던 것을 선택하게 되는 것. 사람들의 인생은 모순으로 가득 차 있고 실수는 되풀이 되며 그것이 인생이라고...
소설의 제목을 정하면서 많이 망설였다. [모순]이라는 추상적 개념어를 가장 구체적인 현실을 다루는 소설의 제목으로 삼기에는 좀 무겁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나 곧 생각을 바꾸었다. 우리들 삶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모든 것이 모순투성이였다. 이론상의 진실과 마음속 진실은 언제나 한 방향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었다.[모순]은 무엇을 따라도 모순의 벽과 맞닥뜨려지는 인간과 삶에 관한 진술이었다. 세상의 일들이란 모순으로 짜여있으며 그 모순을 이해할 때 조금 더 삶의 본질 가까이로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 이상 구체성을 띤 제목은 없을 터였다. - p.306 작가의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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