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부카를 위한 소나타]는 일본 음악 저작권 연맹이 대형 음악교실 '미카사'에 저작권 사용료를 징수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저작권 연맹의 직원 다쓰바나는 단지 어릴 적 첼로를 켜본 중,상급자라는 이유만으로 미카사에 잡임해 어떤 식으로 곡들을 사용하고 있는지(어떤 식으로 저작권, 연주권을 침해하고 있는지) 조사하라는 임무를 받게 된다. 하지만 다치바나에게 첼로는 덮어두고 싶은 심해의 악몽이었다. 그는 자신의 몸보다 큰 첼로를 짊어지고 레슨을 받으러 가던 중 유괴당할 뻔 했다. 큰 첼로가 차에 부딪히며 유괴는 미수로 그쳤지만 첼로 배우는 것을 원래 반대하던 어머니의 분노로 인해 첼로는 불 태워졌다. 그 이후로 다쓰바다는 첼로만 보면 그 때의 기억에 의식이 점점 심해로 가라앉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부웅, 하고 묵직한 저음이 방의 공기를 진동시키자 첼로가 닿아 있는 왼쪽 가슴의 쇄골 아래에 짜릿한 음압이 바르르 전해졌다. 오랜만에 첼로 음을 듣자 눈이 번쩍 뜨인 듯한 기분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첼로를 배우러 다니면서 그의 불면증은 좀 나아졌고 단조롭던 하루가 첼로로 가득하기 시작했다. 첼로를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히던 그였는데, 첼로가 다시 그를 구원했다. 물론 스파이로서 수업을 녹음하고, 들키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계속하면서 가슴 한켠에 죄책감을 계속 쌓아두고 있었지만 첼로에 대한 그의 마음은 진심이었고 선생님 오타로에 대한 동경도 진심이었다. 다쓰바나는 오타로의 제자들로 구성된 친목 모임에도 나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실컷 웃고 떠들며 편안함을 느꼈고 그들과 계속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연말 미카사의 발표회에서 연주할 곡을 고르던 중, 아사바가 그에게 스파이 영화의 OST [전율하는 라부카]를 추천한다. 간략하게 내용을 설명하면서 "스파이라니. 진중하고 고요한 다쓰바나에게 딱 어울리잖아"라고 말한다. 다쓰바나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다.
적국에 잠입해 일반인으로 위장해서 지내는 사이에, 평범한 삶이 무엇인지 점점 깨달아가. 이웃 사람들과 즐겁게 술을 마시고, 근처에 사는 아이와 빵을 굽는 생활이 자신의 인생에도 찾아올 수 있다는 걸 깨닫고 나면 그 후로는 괴로울 뿐이다. 그 마음은 진짜인데.
선생 아사바가 다쓰바나에게 술 한잔 하자고 전화한다. 아사바는 29세의 나이로 일본 유명 콩쿠르에 도전 할 수 있는 마지막 해였다. 헝가리에서 유학했지만 일본 내에서는 이력이 없었던 그는 마지막으로 도전해보고자 했다. 고민들과 걱정을 다쓰바나에게 털어놓고 다쓰바나의 비밀도 말해달라고 한다. 다쓰바다는 어릴 적 트라우마를 말한다. 그 둘은 감정을 공유하고 더 가까워진다.
스물아홉 살의 연주와 서른 살의 연주에 대체 어떤 차이가 있지? 아니면 내가 모를 뿐, 뭔가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걸까. 쓸데없다고 여겼던 욕심과 허영을 나도 남들 못지않게 가지고 있지. 이번 일본 음악 콩쿠르가 마지막 기회야.
재판 날짜가 다가오고 있다. 그동안 수업을 녹음한 파일들과 간단한 보고서를 제출했고, 그 날 증인으로 참석한면 끝이다. 하지만 다쓰바나의 신분을 공개하면 미카사 측에서도 아사바를 증인으로 세울 거라는 상사의 말에 다쓰바나는 흔들린다. 아사바는 그의 인생에서 중요한 순간을 앞두고 있었다. 이런일이 일어난다면 그는 콩쿠르 무대에 설 수 없을 것이다.
착한 사람이었다. 처음 만났을 떄와 다름없이 호감을 주는 성격. 하다못해 야비한 점이라도 하나 있으면 양심이 덜 아플텐데. 아사바에게 찾아온 기회를 뭉개버리면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을까?
다쓰바나는 아사바에게 말한다. "콩쿠르, 제가 어떻게든 할게요, 선생님."
다쓰바나는 지금껏 제출한 모든 녹음파일을 지워버린다. 진짜 스파이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는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안정적인 직장을 버릴 각오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회사에서 다른 파벌(다쓰바다에게 잠입을 명령한 상사와 다른 파벌)이 심어 놓은 스파이로 인해 재판은 진행되고 다쓰바다는 신분이 밝혀질 일이 없어졌다. 약간의 허무함을 느꼈지만 다행이었다. 이대로 사람들에게 자신을 감추고 다시 첼로가 없는 삶으로 돌아가면 된다.
경멸 섞인 눈빛이 날아들자 다치바나는 자신이 무엇보다 두려워했던 것이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듯한 기분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거짓말에다가 남의 비위나 살살 맞추고 말이야. 구청 공무원은 개뿔. 대중음악을 켜보고 싶기는 뭘 켜보고 싶어? 아, 그야 켜보고 싶었겠지. 대중음악을 연주하면 그걸 증거 삼아 몇억 받아낼 수 있으니까. 잘됐네, 강사가 나같이 어수룩한 인간이라."
일을 정리하고 고향으로 내려가야해서 첼로를 더이상 배울 수 없다는 말에 아사바는 정말 아쉬워 했다. 그의 가슴팍에서 음악 저작연맹의 배지가 떨어지기 전까지. 아사바는 지금 한창 시끄러운 음악연맹과 미카사의 재판을 보고(다른 직원이 잠입해 증거를 체출한 재판) 그 선생님은 앞으로 사람을 믿지 못할 거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자신이 정말 아끼던 제자가 스파이었니.
다쓰바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아사바와 제자 모임의 사람들의 연락은 다 차단하고 첼로는 잊었다. 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예전에 예매해 놓은 음악 콘서트에서 자신이 연주했던 [전율하는 라부카]를 듣고는, 친목 모임의 멤버 아오야기를 만나 얘기하고는 그의 마음은 요동쳤다. 그는 아사바가 전해줬던 명함 속 악기점을 찾아갔다. 잠입이 끝나면 필요없어 질 거라 사지 않았던 첼로를 갑자기 샀다. 또 아오야기가 꼭 오라고 했던, 친목 모임의 멤버들이 연주할 음악바에 찾아갔다. 아사바가 올 줄 알았는데도 다쓰바나는 갔다. 어릴 때처럼 묻어두지 않고 두려움을 깨고 나왔다. 아사바와 마주했다.
홀로 비차체를 나서서 후타코신치의 상점가를 걸었다. 가게는 대부분 문을 닫은 뒤였다. 가을 밤, 인적 없는 길에서 심호흡을 하고나니 눈이 점점 맑아졌다. 문득 인기척이 느껴져 다치바나가 발을 멈추자 거울같이 반짝이는 점포의 셔터 테두리에 자신의 모습이 비쳤다. 거기 서 있는 사람은 의심할 여지 없는 어른이었다. 먼 예날부터 고착된 연약한 자신의 이미지를 훌훌 털어버린 모습이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건이 실화라고 해서 마치 영화를 보는 듯 실제 장면들이 눈 앞에 그려지는 것 같았다. 책 속에서 설명한 곡들에 대해 직접 들어보고 싶다. 특히 [전율하는 라부카]는 적국에 침투한 스파이 영화의 OST라니까 첼로와 정말 잘어울릴 것 같아서 꼭 직접 들어보고 싶다. 글을 나름 짧게 쓰려고 했는데도 길어졌다. 그런데도 생략한 사건들이 많다. 이렇게 모든 장면들이 다 필요한 책은 오랜만이라 쓰기 힘들었다. 진짜 재미있게 읽었다. e북으로 읽었는데 책을 소장하고 싶어질 정도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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