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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거나 음악/음악 책

[음악의 언어 - 송은혜] 책 소개, 책 내용, 감상

by 이은LE 2023. 9. 7.

음악의 언어


1. 책 소개

 이 책의 작가 송은혜는 한국과 미국, 프랑스에서 음악을 공부했고 지금은 프랑스 렌느 음악대학과 렌느 시립음악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그녀의 표현으로 하자면 평범한 동네 음악 선생님이다. 음악 관련 칼럼도 연재하고 SNS를 통해 음악과 이방인의 삶에 관해 사람들과 소통한다. 이 책에서 그녀의 음악적 경험들과 음악과 함께 하는 일상을 33개의 변주곡으로 표현한다. 단순히 음악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음악을 하며 외국에서 사는 이방인으로서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어서 다른 나라의 문화들도 살펴볼 수 있다. 
 
 

2. 책 내용

(33개의 일상 변주곡 중 내가 재밌게 읽은 내용들을 소개한다.)
 
Var.2 습관처럼 좌절, 연습
 음악을 배우기로 마음먹었다면 연습은 접어둘 수 없는 단어다. 음악을 배우는 시간은 좌절의 연속인데, 스스로에 대한 꾸준한 실망과 낙담을 견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연습이기 때문이다. 실망하고 연습하고 약간 회복하고, 또다시 실망하고 습관처럼 연습하고 조금 더 회복하는 시간을 무한히 반복하다 보면, 어느 순간 미세하게 성장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다음 목표를 꿈꾸게 된다. 이렇게 좌절은 조금씩 익숙해져 삶의 일부가 된다. 
 
Var.12 앙상블, 타인은 음악이다.
 무대 위에서 연주자들이 눈빛을 주고받을 때 느껴지는 묘한 희열이 있다. 말로 표현할 필요 없이 숨소리와 눈빛으로 은밀하게 소통하는 순간, 소리를 주고받을 때와는 다른 차원의 즐거움이 더해진다. 음악은 언어다. 소리로 마음을 주고받는 언어. 독주가 연주자와 관객의 대화라면 앙상블은 음악 내부에서 각 성부간에 이루어지는 대화이다. 서로 다른 소리를 내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은 음악이 가진 독특한 매력이다. 앙상블은 타인을 통해 음악 세계를 확장한다. 나의 세계와 타인의 세계가 부딪혀 깨질 때 마음을 열면 무한히 확장하는 세계를 맛볼 수 있다. 타인은 또 다른 음악이다.
 
Var.17 반복의 아름다움, 베토벤, 인생 변주곡
 베토벤이 평생 천착한 장르는 변주곡이다. 변주곡은 단순한 주제 선율을 다양하게 변형하며 반복하는 음악이다. 베토벤이 변주시키는 주제는 두가지 스타일인데, 하나는 주제 선율 자체가 아름답고 매력적인 것이고 하나는 주제만 보면 엉성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이다. 디아벨리 변주곡은 주제 자체는 아름답지 않지만 주제롤 해체해 그 안에 담긴 독특한 성격의 씨앗을 분리해내어 다양한 변주로 꽃피웠다. 디아벨리 변주곡을 들으며 위안을 얻는다. 빈약하고 어설픈 주제라도 포기하지 말자. 매일의 삶이 만드는 변주를 견디다 보면 언젠가 독특하고 풍성한 변주곡의 마지막장을 감사히 덮을 날이 올테니.
 

3. 책 속의 문장

 너의 날들이 그저 게으르게 흘러가도록 두지 말기를. 노력하고, 과제를 완수하고, 결과에 연연하지 말기를. 매일의 차이가 구도의 길로 너를 이끌어 갈 것이니. - 베토벤의 일기장에서
 

4. 감상

 우리는 종종 '언어가 다르더라도 음악은 통한다'라고 한다. 이 책 속 영어도, 불어도 못하는 일본인 아마추어 첼리스트의 반주를 한 일화를 보면 그들 사이에 언어는 필요하지 않았다. 음악이 곧 언어이고, 음악으로 하는 대화는 충분했다. 내가 독일에서 공부하던 시절, 독일어도 영어도 심지어 한국어도 어중간해지던 시기에 교수들의 말을 이해하려 초집중 상태를 지속했었다. 그러다 교수님이 직접 들려주는 소리에 말을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 순간부터 말을 이해하려는 불필요한 에너지를 쏟지 않고 온전히 음악에 집중할 수 있었다. 
 이 책은 33개의 파트로 나누어져 있는데 각 파트마다 한두곡씩 소개하고 있다. 책을 읽고 한동안 굴렌 굴드의 연주에 빠져 지냈다. 'Var.21 북극을 향하는 속도'에는 북극을 사랑한 굴드에 대해 나온다. 차갑고도 무미한, 무채색의 대륙. 세상과 단절된 고요 ,광활한 땅을 휘덮은 회색빛 안개는 굴드가 평생 갈망했던 고립과 더없이 어울린다고 한다. 이 글을 읽고 그의 연주를 들으니 자연스럽게 이미지가 떠올랐다. 광활한 눈밭 위 굴드와 피아노. 이 책을 읽기 전까지 굴드의 바흐 연주는 어딘가 쓸쓸하지만 제멋대로인 이상한 연주였는데 이미지를 계속 떠올리며 들으니 굴드가 자신의 음악에 빠져 흥얼거리는 소리에 나까지 빠져드는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주로 혼자서 연습하고 연주하던 나에게, 작가는 다양한 음악 활동을 통해 어디에나 음악이 있음을 소개해 주었다. 연극 속에, 앙상블 속에, 일상의 큰 슬픔 속에... 다양한 음악들을 이방인의 시선으로 말해줘서 재미있고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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